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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명분 없는 미ㆍ중 ‘패권 경쟁’과 한국
기사입력 2020-06-09 06:00:17.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미ㆍ중 갈등으로 인해 한국 외교가 곤경에 처했다. 2018년 미국의 대중국 무역적자 축소 정책으로부터 촉발된 무역 전쟁이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정치와 외교 영역으로 확산됐다. 양국은 하루가 멀다 하고 상대를 비난하는 ‘말 폭탄’을 주고받는다.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는 요즘 상황은 과연 이들이 세계질서를 주도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 정도로 상궤(常軌)를 벗어났다. 와중에 두 나라는 한국에 대해 홍콩 보안법 문제나 사드(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 방위비 문제 등에서 자국의 입장에 협조하라는 강권(强勸)의 자세를 보인다.

  중국은 한ㆍ중 경제관계를, 미국은 한ㆍ미동맹과 북한 핵문제를 매개로 하여 각기 한국을 자기편에 묶어 두려는 것이다. 한국은 스스로 미ㆍ중 사이에서 양자택일이 불가피하다는 강박증에 시달린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져 양국이 모두 손을 내민다는 식의 견강부회는 부적절하다. 북한 핵과 중국과의 경제관계나 한ㆍ미동맹 관련 사안 등 한반도 현안을 미ㆍ중은 양자 간의 제로섬 게임으로 인식하고 한국을 압박한다.

  최근 미ㆍ중 갈등 양상을 보면, 20세기를 풍미했던 보편 가치와 이념을 앞세운 주도적 영향력 확보 전략과는 결이 다르다. 근시안적 자국 이익과 국내 정치의 셈법에 따른 일그러진 ‘패권’ 추구의 적나라함이 드러난다. 세계의 미래를 위한 ‘대의’와 ‘명분’은 사라졌다. ‘미국 우선주의’와 ‘중국의 꿈’이 부닥치는 상황에서 이들은 걸핏하면 원색적인 ‘분노’를 앞세운다. 이제 이들이 추구하는 ‘패권’은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스파르타의 무력에 의한 지역 지배권을 의미했던 ‘스파르타 헤게모니’에 가깝다. 중국 춘추전국 시대의 ‘패도 정치’에 의한 복속 관계의 설정을 떠올리게도 한다.

  1648년의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 근대 유럽 주권국가 간 국제질서 형성 과정에서 ‘헤게모니’의 개념은 상대 국가들의 자발적 동조를 기반으로 한 영향력으로 진화한다. 물론 주도국이 군사력과 경제력과 함께 문화적 영향력도 갖춰야 함은 전제 조건이다. 20세기 초 이탈리아 정치이론가 안토니오 그람시가 설파했던 것처럼 ‘헤게모니’는 ‘사회 구성원의 자발적 동의’를 유도하기 위한 제도적, 문화적 주도권 행사라는 생각과도 통하는 맥락이다. 모름지기 현대 국제관계에서도 주도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보편적 가치와 인류의 공동 이익이라는 ‘명분’을 갖춰야 관련국의 동조를 끌어낼 수 있다.

 최근 미국과 중국의 갈등과 경쟁 양상은 맹목적이고 근시안적인 힘의 ‘패권’ 추구와 흡사하다. 대의명분 없는 기 싸움인 것이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미국의 주장과 조공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중화질서의 재건을 앞세운 중국의 국가주의 경도가 그러하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11월 대선을 향한 ‘강한 미국’의 이미지 연출을 위해 중국 카드를 활용한다. 시진핑 주석은 국가주의로 포장한 권력 강화를 위해 미국과의 대립각을 세우고, 홍콩의 ‘일국양제’를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

 미ㆍ중의 명분 없는 갈등과 국내 정치용 힘 과시 움직임에 휘말려 한국이 선택지를 고민할 필요는 없다. 우리 스스로 양국 간의 갈등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여 경제와 안보의 총체적 위기를 가정한 강박증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미ㆍ중은 ‘긴장 국면’의 정치적 가성비가 감소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악수할 수 있다. 미국은 중국의 시장과 저렴한 생산 요소를, 중국은 미국 시장 및 기술을 필요로 한다. 사실 양국 간의 갈등은 그만큼 상대가 필요하기에 집요해지는 ‘밀당’의 정서를 깔고 있다. 미ㆍ중이 보편 가치를 제쳐두고 자기 중심의 수직적 국제질서를 추구하거나 힘의 과시에 탐닉한다면 그들의 국제적 영향력 또한 쇠락할 것이다.

 한국은 성급한 줄서기로 스스로 미래의 전략적 입지를 제한할 필요가 없다. 미ㆍ중이 신경을 곤두세우는 무역 갈등과 홍콩 문제, 사드의 한반도 배치, 북핵 및 남북협력, 방위비 분담 등과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어느 편에 동조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개별 사안에 대한 논리와 보편 가치의 관점에서 타당성을 갖춘 우리 스스로의 입장을 일관되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정권의 성격에 따른 진영 논리에 몰입해, 국제사회의 보편적 인식과 차이를 보이는 정책을 추구한다면 우리의 외교적 입지가 갈수록 궁색해질 것임은 자명하다. 다소 ‘외교적 불편함’을 감내하더라도 국가 정책에서 논리적 타당성과 보편 가치의 지향성을 유지하는 것이 미ㆍ중 갈등의 소용돌이에 흔들리지 않을 방책이다.

 

오승렬(한국외대 중국외교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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