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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이 일상화된 북 주민 “물도 전기도 당연하지 않다”
기사입력 2020-02-14 06:40:09.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북한 주민이 말하는 인프라 실상

# 북한 양강도 A씨의 하루

매일 아침, A씨의 출근 준비는 오수가 범람하는 공중화장실에서 시작된다. 갈탄을 이용한 아궁이에 물을 끓여 간단히 씻고 밥을 먹고 나니 벌써 출근시간이 아슬아슬하다. 직장은 걸어서 40분 거리. A씨가 사는 도시에는 시내버스 노선이 아예 없다. 거리에는 신호등도 없고, 도로 대부분이 흙길이다. 여름철에 범람했던 침수 도로는 여전히 복구되지 않았다.

근무시간은 더디게만 흘러간다. 국내용 휴대폰을 이용해 인트라넷 접속은 가능하지만, 친구와 카카오톡 잡담은 꿈도 못 꿀 일이다.

퇴근길. 집으로 오는 길에 공공기업소에 들려 고추장을 배급받았다. 그런데 집에 도착해보니 물통에 물이 떨어졌다. 물 배달을 시키는 김에 집에 모아 놓은 쓰레기를 내다 팔았다.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도적전기’를 이용해 충전해 놓은 ‘노트텔(USB 등을 이용한 영상감상장치)’을 이용해 한국 드라마를 짧게 시청했다. 잠을 청하려니 집이 너무 춥다. 집안에 만들어 놓은 비닐하우스로도 찬 기운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A씨는 다시 갈탄 아궁이에 물을 올렸다. 끓인 물을 8ℓ짜리 ‘장통’에 넣고 껴안으니 이제야 이불 속에 따뜻한 기운이 돈다.

 

 

서울대 건설환경종합연구소가 동대학 통일평화연구원의 지원을 받아 평양과 함경북도, 황해북도, 양강도 출신 북한 이탈주민(3년 이내)을 대상으로 ‘북한의 생활인프라 수요’를 조사했다. 지역별 국민 요구 수준에 맞는 인프라 구축의 목표를 설정하고자 작년부터 실시된 1차 간이조사였다.

결과는 생각보다 처참했다.

이복남 서울대 건설환경종합연구소 교수는 “현재까지 나온 북한 인프라에 대한 연구는 지나치게 거시적이고 일방적 접근이어서, 북한 주민에게 직접 생활 인프라 수요를 물었는데 예상보다 상황이 훨씬 심각했다”라며 “북한 이탈주민과 면담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사실은 북한의 생활인프라가 주민이 체감할 수 있는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북한 인프라에 대한 접근 방식이 바뀌어야 할 것 같다”라고 지적했다.

북한의 아파트에는 주차장이 없다. 시내에도 공용주차장이 없다. 차량을 소유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도로 사정이 대단히 좋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북한 주민은 대중교통 접근성을 거주지 선정의 최우선 과제로 꼽는다. 평양시민은 지하철 대중화로 초역세권 거주를 선호한다.

평양을 벗어나면 대부분 지역은 흙길이다. 도로보수는 주민들이 자체 조달한 자갈과 모래를 통해 진행된다. 도로사업소는 포장만 수행하는 식이다.

4개 지역 이탈주민이 꼽은 가장 큰 애로사항은 물과 전기였다.

겨울철에는 평양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이 제한급수를 시행하고, 양강도는 3∼4일 간격으로 5시간 급수가 된다. 가구마다 200ℓ 물탱크를 보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급수 자체에 만족하기 때문에 수질을 따질 상황은 아니지만, 굳이 따지자면 물에서 실지렁이가 자주 발견된다.

전기는 평양에서도 제한적으로 공급된다. 함경북도는 여름에 하루 20시간, 겨울에 10시간만 전기를 공급하는데 전기 공급이 불안정하다 보니 신흥부자와 당 간부 계층은 아파트 저층형 거주를 선호한다. 황해북도는 그나마도 3일 간격으로 저녁에 3시간씩 전기가 공급되는데 20층 아파트에 엘리베이터가 없다. 양강도는 가정 내 전기공급이 끊어진 지 15년째다.

폐기물에 대한 개념은 아예 부재하다. 난방용 땔감으로 사용하기 위해 가정 쓰레기를 구매하는 중개인이 있을 정도다.

면담을 진행한 신승우 박사는 “이탈주민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분리수거와 쓰레기를 유료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리는 것”이라며 “북한에서는 버릴 쓰레기가 없기도 하지만, 쓰레기 처리비용을 내는 개념 자체가 없다. 추측하건대 중앙정부 차원의 폐기물 처리 시스템이 부재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조사 결과 중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북한 이탈주민들은 “인프라는 공짜가 아니다”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미 개인 자본을 통해 인프라를 직접 조달하는 생활방식에 익숙해진 탓이다.

이러한 북한 주민들의 인식 수준은 한반도 국가 인프라 구축 전략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매우 근본적인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실제로 북한 이탈주민들은 한국의 북한 인프라 연구 접근 방식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 탈북 지식인은 “한국이 쏟아붓는 통일정보예산에 비해 연구의 연속성이 보장되지 않고, 인프라 관련 기관이 많은데도 인프라 데이터를 개별 수집하고 공유하지 않는다”라며 “근본적으로 북한 인프라에 대해 유토피아적 구상만 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복남 교수는 “지금이라도 이탈주민 3만명 대상 설문조사를 통해 인프라 실태 파악을 위한 기본 데이터를 만들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 연구자들에게 공개해야 한다”라며 “북한지역 경제와 사회, 정치적 변화에 따른 인구이동과 지역을 재구성하는 작업이 대북 사업 추진 이전에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또 이 교수는 “북한 출신 건설인력의 활용방안과 기술 역량 확보를 위한 지원전략 수립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지희기자 jh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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