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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창] 제철 그림
기사입력 2019-08-12 06:00:29.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자동차에 노란 점묘화가 그려졌습니다. 불규칙한 점과 무늬로 이루어져 지저분해 보이지만 붓도 없는 벌과 새들이 만들어낸 그림입니다. 꽃이 있는 계절에만 볼 수 있는 제철 그림입니다.

 주말을 보내는 집에서 양봉 농장이 500미터 거리에 있습니다. 이곳 벌들이 주요 화가입니다. 봄이 되어 꽃이 피기 시작하면 이들은 꽃가루와 꿀을 따기 위해 비행을 시작합니다. 아카시아 꽃이 피면 뒤쪽 비봉산으로, 밤꽃이 피면 옆에 있는 밤나무 산으로 항로를 정합니다. 이들은 대부분 한곳으로 출동하여 꽃가루와 꿀을 채집하는데 대열에서 벗어난 벌들이 동네로 내려와 그림을 그립니다. 캔버스는 자동차, 물감은 그들의 배설물입니다. 땅에 그려봤자 보이지도 않으니 작정을 하고 차에만 뿌리는 듯, 하루만 주차해 놓아도 그림처럼 보입니다.

 공중 화가는 벌뿐만이 아닙니다. 벌들이 주로 사인펜으로 찍은 듯 작은 점에서부터 붓으로 찍은 듯한 큰 점까지 다양한 원들로 무늬를 만듭니다. 조금 두껍게 칠하기도 하고 가끔 선을 긋기도 합니다. 까마귀는 하얀색 커다란 점으로 강조를 할 줄 압니다. 아주 가끔 보라색을 띤 물감으로 덧칠을 하는 새도 있습니다. 바탕색이 다른 자동차 캔버스가 좋은지 모든 차에 일색의 그림을 그려놓습니다.

주민들은 이런 그림을 보고 싶지 않지만 뾰족한 수는 없습니다. 며칠 움직이지 않는 차는 자동차 커버를 씌워 놓습니다. 나도 아쉬운 대로 앞 유리창에만 종이박스들을 펼쳐서 올려놓곤 합니다. 회사 동료인지 밤늦게 퇴근하는 두 사람은 커다란 비닐 하나를 가지고 두 차를 함께 씌워 놓습니다. 아예 차 위로 검은 비닐 천막을 쳐놓기도 합니다.

 지난 주말엔 비가 억수같이 퍼부었습니다. 다행히 제철 그림은 이럴 때 사라집니다. 물로 불리고 솔로 문지르기를 여러 번 반복해야 겨우 지울 수 있으니 자연적으로 사라질 때는 속이 시원합니다. 찌는 듯한 8월에도 화가들의 작업은 쉬지 않습니다. 꽃이 피어 있는 한 공중의 화가들과 씨름해봤자 사람이 이길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못마땅해도 철이 지나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꽃이 피지 않는 세상은 상상하기도 싫으니까요.

 월요일 아침, 나는 공중 화가들의 그림 속에 앉아 고속도로를 달려 서울 일터로 향합니다. 그러곤 짬을 내어 깨끗한 캔버스를 만들기 위해 자동세차장으로 들어갑니다.

 

정하정(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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