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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개헌과 관련한 절차적 정당성
기사입력 2018-04-13 07:00:18.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지난 달 20일 대통령의 개헌안이 공개되었고, 26일 국무회의 심의와 대통령의 전자결재를 거쳐 국회에 제출되었다. 현행 헌법에 의하면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헌법개정안이 제안되면 20일 이상의 기간 동안 이를 공고하여야 하며, 공고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재적 국회의원 2/3의 찬성을 얻어 의결되어야 한다. 국회가 의결한 후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붙여 국회의원 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으면 개헌안이 확정된다. 헌법 개정에 국무회의의 심의가 필요한 것은 이 또한 헌법이 제89조 제3호에서 규정하고 있는 절차이기 때문이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헌법은 한나라의 최고규범이다. 어떠한 법령이나 제도도 헌법에 위반할 수 없으며, 모든 국가기관은 헌법에 규정된 내용을 구체화해야 할 의무를 부담한다. 헌법 개정 절차를 특히 까다롭게 마련하여 국민투표까지 거치도록 하고 있는 이유는 이처럼 중차대한 헌법이 집권 정치세력 혹은 국회 다수당에 의해 그때그때 자의적으로 개정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이번 개정 헌법안은 대통령 4년 연임제와 대통령 선거의 결선 투표제를 비롯하여, 현행 헌법의 많은 부분에 수정을 가했다.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 평등권 등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이 아니라 외국인을 포함한 ‘사람’으로 확대했고, 사회보장은 국민의 기본적 권리가 되었으며, 주거권, 안전권 등 새로운 권리도 천명했다. 수도에 관한 사항을 법률로 규정할 수 있도록 하였고, 영장의 신청 주체를 검사로 한정한 조항을 삭제했으며, 선거 연령을 만 18세로 낮췄다.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 및 국민발안제를 도입하는 한편, 경제민주화 관련 조항도 대폭 손질하였다. 소상공인을 별도의 보호 대상으로 명시하는 한편, 동일 노동 동일임금 지급 의무를 국가에 부여하고, 노사대등 결정원칙을 명시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그 외 비상계엄하의 단심제 폐지나, 공무원의 원칙적 노동3권 인정, 군인 등의 국가배상청구권 제한 조항 폐지 등 그 하나하나만으로도 법률을 새로 제정하거나 대폭 개정하여야 할 사안이다.

 

 그 어떤 규범도 완벽할 수는 없으며, 정치·경제적 환경이 바뀌고 국민들의 의식이 변화함에 따라 헌법 역시 현실과 괴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현실과 규범 사이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헌법 개정은 불가피하며, 지난 대선 과정에서 거의 모든 후보들이 개헌을 공약으로 제시한 것도 충분히 납득할만한 일이다. 현행 헌법의 경우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의 결과로 대통령 직선제가 수용되면서 여야 합의로 마련되었고, 그로부터 약 30년이 지난 오늘날의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여러 가지 미흡한 점이나 개선되어야 할 내용이 많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한 나머지 헌법 개정을 극히 신중한 절차에 의하도록 규정하면서 국민적 합의를 요구한 현행 헌법의 정신까지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이번 대통령의 개헌안은 그 내용을 떠나 여러 가지 아쉬운 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선 개헌 작업의 전 과정에서 의견 수렴과 조율과정이 전혀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개헌안은 대통령 직속의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가 약 한 달간의 작업을 통해 마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원회는 그 한 달 동안 권역별 토론회, 관련기관 간담회 등의 외부일정과 17차례의 분과위회의, 4차례의 전체회의 등을 거쳤다고 밝히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얼마나 심도 깊은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었을지 매우 의문스럽다.

 

 헌법이 규정한 국무회의의 심의 절차는 문자 그대로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일반 법률 하나를 만들 때에도 차관회의, 법제처 검토, 국무회의 심의 등을 거치며 논의가 이루어지는데, 개헌안이 이보다 더 훨씬 더 간소한 방식으로 국무회의를 통과한 것이다. 현재와 같은 국회 의석수를 고려하면 야당의 동의 없이 재적 국회의원 2/3의 찬성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 야당에서 개헌안을 극렬 반대하고 있는 상황인데, 그렇다면 과연 이번 개헌안이 국회통과를 전제로 제안된 것인가 하는 의구심 또한 지우기 어렵다.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에 대해 국회는 찬반 표결만을 할 수 있을 따름이며, 여야 합의로 6월 13일에 실시되는 지방 선거일에 국민투표에 붙이고자 한다면 늦어도 5월 4일까지는 국회 개헌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국회의 개헌논의가 지지부진한 데 대해서는 그 자체로 비난받아 마땅하겠으나, 시기적으로 너무나 촉박한 일정이다.

 

 참고로 이제 그 수명을 다하였으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한다고 퇴물 취급을 받고 있는 현행 헌법의 경우, 1987년 각 정당의 개헌안, 헌법학자 중심의 개헌안, 대한변협의 개헌안이 나왔고 쟁점 조항별로 학자 및 전문가들의 논의를 거쳐 최종안이 마련되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 합의된 헌법이었기에 지난 30년간 우리나라의 헌정질서를 무리 없이 규율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이승한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

※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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