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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대중의 분노와 진실     
기사입력 2017-12-15 08:00:14.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이승한(변호사ㆍ법무법인 동인)

 얼마 전 한 언론사에 근무하는 작가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어느 재벌 3세의 로펌 변호사 폭행 사건과 관련해 문의할 내용이 있다고 했다.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치 않으니 사건이 종결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작가는 이렇게 답했다. “당사자들 의사와 무관하게 재벌 3세를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 이런 경우에 단순 폭행이 아닌, 다른 죄명으로 처벌이 가능한지 전문가 의견을 듣고자 전화를 드렸습니다.”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사적인 자리에서 발생한 일이고, 사안도 경미하며, 당사자는 사건화를 원하지 않는데 대중들의 분노 때문에 처벌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는 말이 좀처럼 납득되지 않았다. 하지만 인터넷 여론은 이미 들끓고 있었고, 급기야 변호사 단체가 회원들 권익 옹호를 내세우며 고발장을 접수시켜 수사가 진행되기에 이른다.

 결론은 그 재벌 3세를 처벌할 수 없다는 쪽으로 내려졌지만, 수사 과정을 설명하는 경찰 책임자의 발언을 듣고 다시 한번 놀랐다. 그 자리에서 있었던 재벌 3세 발언의 일부를 모욕죄로 처벌할 수 있는지 여부 및 “날 주주님으로 부르라”는 발언을 강요죄로 처벌할 수 있는지도 검토했으나 혐의를 인정하기에는 부족했다는 것이다. 이는 한마디로 재벌 3세와 로펌 변호사들 사이에 술자리에서 있었던 모든 행위에 대해 처벌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진행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언제부터 수사기관이 개인의 사적 영역에 이토록 관심을 가졌나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또 다른 소식이 전해진다. 사실은 대형 로펌 변호사들이 술자리에서 그 재벌 3세를 사실상 무시한 것이 만취와 폭행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그럴 리 없다는 추측성 반박도 있지만, 그와 같은 보도가 나간 이후 여론의 흐름이 미묘하게 달라진 것은 틀림이 없다. 여기에서 의문이 생긴다. 과연 처음부터 술자리에서 있었던 사실관계가 명확하게 전해졌더라도 대중은 그토록 분노하고, 이 사안이 경찰의 수사 착수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을까.

 이 사안은 그래도 당사자에게는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하지만 폭발한 민심이 예기치 않은 결과를 초래한 경우도 적지 않다. 최근의 사례로는 아이만을 먼저 하차시키고 아이 엄마를 내려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분의 대상이 된 한 시내버스 기사 사건이 있다. 조사 결과 버스기사의 잘못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악성 댓글의 피해자가 된 당사자는 아직까지도 자살 충동에 시달리며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최초 잘못된 내용의 글을 올렸던 사람이나 해당 기사를 옮기며 그 버스기사를 욕했던 사람들은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성폭행 혐의로 고소돼 1년간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았던 한 시인은 무혐의 결정 이후 자살을 시도했다. 삶을 포기하고 싶다고 느낄 만큼 그를 힘들게 했던 건 성폭행 혐의가 아니라 사람들의 조롱과 공격이었다. 한 대학 교수는 제자를 성추행했다는 대자보가 붙은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를 기정사실로 여기고 그를 모욕했으나, 훗날 그 폭로는 거짓으로 밝혀졌다.

 요즘 사람들은 끊임없이 분노를 표출할 대상을 찾고 있는 듯하다. 일단 어떤 정보가 제공되면 이를 일단 진실로 받아들이고 잘잘못을 따지는 일에 몰두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피해자를 옹호하고 불의를 응징한다는 정신적 만족감, 다수의 사람들이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점에 대한 정서적 안정감 등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일단 공격 대상이 된 사람은 해명의 기회조차 제대로 갖지 못한 채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물론 그와 같은 사람들의 판단이 정확할 수도 있다. 빠른 여론의 호응이 필요한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꽤 많은 사안에 있어 진실은 대중의 분노와 그로 인한 당사자의 고통 사이 어디쯤엔가 자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설령 나중에 진실이 밝혀진다 해도 그때는 너무 늦거나, 사람들은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조차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마저 보인다. 이는 이른바 타진요 사태와 최근의 김광석 사건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교훈이다.

 그렇다면 조금만 판단을 보류하면 안 될까. 어떤 사안의 전후 사정과 감춰진 이면이 충분히 드러날 때까지 기다려줄 수는 없을까. 당신이 기사를 읽고 혐오하게 된 그가 사실은 억울한 사람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댓글을 달기 전에 약간이라도 염두에 둘 수는 없을까.        

 ※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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