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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건설인으로 '제2인생' 심권호 LH 위례사업본부 부장
기사입력 2013-09-05 05:00:06.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작은 거인’ 심권호. 사람들은 그를 그렇게 부른다. 그가 체격에 비해 한국 체육사에 남긴 족적이 크기 때문이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때 한국에 첫 금메달을 안긴 그에게 아시아는 좁았다. 근대 올림픽 100주년을 맞은 1996년 애틀란타올림픽에선 그레코로만형 48kg급에서 금메달을 차지해 한국 올림픽 사상 100번째 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다시한번 최강자임을 확인한 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는 그레코로만형 54kg급으로 체급을 올려 우승을 차지해 레슬링 사상 첫 2연패 및 2체급 석권도 달성했다.

 더불어 48kg급과 54kg급에서 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을 모두 제패해 그랜드슬램의 기쁨도 맛봤다. 이정도면 레슬링계의 ‘작은 거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그가 지금은 건설현장을 누비며 건설인으로서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그것도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뛰어놀며 ‘레슬링 DNA’를 길러냈던 곳에서 말이다. 그는 현재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으로 남한산성 자락이 닿아 있는 위례신도시에서 국민을 위해 주택을 짓는 일을 하고 있다.

 LH 스포츠단 소속으로 활동하다 은퇴 후 현재 LH 위례사업본부 사업관리부장으로 제2 인생을 살고 있는 그를 만나봤다.

- 레슬링 금메달리스트에서 LH 위례사업본부에서 건설업무를 맡기까지 참 드라마틱한 변신인데요. 어떻게 위례사업본부에서 일하게 됐습니까?

 LH로 합병되기 전 소속이었던 주택공사는 스포츠단 소속 선수가 국제대회에서 탁월한 성적을 거두면 포상으로 승진하는 제도가 있어요. 저같은 경우 주택공사에 입사한 이후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안게임, 올림픽에서 성적이 좋아서 그야말로 과장까지 초고속 승진을 했지요. 동료들 보기가 미안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앞두고 당시 사장님이 금메달을 딸 경우 부장 승진을 약속한 겁니다. 사실 전 부장 승진까지는 생각도 안했는데 말입니다.

 

- 초고속으로 부장까지 승진을 했겠네요.

 네. 시드니에서 금메달을 따고 약속대로 부장으로 승진을 했지요. 그리고 LH는 스포츠단 소속 선수가 은퇴하면 그 이후 회사 업무를 맡아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주택공사와 토지공사가 합병하면서 LH 소속이 된 후 회사에서 위례사업본부에 자리가 있으니 본격적으로 회사관련 업무를 배워서 맡아보는게 어떻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주택공사에 있을때부터 저도 회사에 관한 일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은 늘 갖고 있었습니다. 제가 19세에 태릉(국가대표선수촌)에 들어가서 32세에 나왔습니다. 젊은 시절을 아무것도 못하고 오로지 운동만 하고 지냈어요. 20대 시절 가장 부러웠던것이 또래들이 아르바이트해서 용돈벌어 자기 하고싶은 것 하는 거였습니다. 또 내가 LH에 근무하고 있는 이상 회사 일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선뜻 나섰습니다. 운동외에 뭔가를 배운다는게 가슴벅찼죠.

- 지금 위례사업본부 보상팀에서 일한다는데 구체적으로 하는 업무는 무엇인가요.

 신도시를 만드려면 민간인들이 원래 갖고 있던 토지에 대해 보상이 필요하잖아요. 토지 보상과 관련해 민원인 상담도 받고 보상 집행 등의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 민원인 상대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닐텐데요.

 보상금에 대해 불만을 품고 욕설도 하고 거세게 항의하는 분들도 더러 계세요. 그래도 제가 성남 토박이 출신이라서 그런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통하는 면도 있고 원만하게 잘 처리하고 있습니다. 나가실땐 대부분 웃으며 나가시더라구요.

- 민원인들이 많이 알아보겠습니다.

 보상 관련 상담을 하다보면 알아보시는 분들이 많아요. 아니 심권호가 여기 왜 있냐는 질문부터  방송 잘 보고 있다고 반갑게 인사하는 등 반응이 다양합니다. 보상과 관련해 항의하러 왔다가 제 사인받고 간 민원인들도 많습니다.

 

   
 어릴때부터 다진 ‘레슬링 DNA’

 심권호는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유명하지만 그가 두각을 나타낸 것은 중학교때부터다. 3학년 때인 1987년 부산 소년체전 자유형 32kg급에 출전해 금메달을 땄는데, 그 메달은 소년체전 사상 경기도가 레슬링에서 차지한 첫 금메달이었다.

- 레슬링은 언제부터 시작했습니까?

 어릴적부터 엄청난 개구쟁이였습니다. 초등학교때는 남한산성이 놀이터였어요. 하루종일 산을 올라갔다 내려오며 산에서 뒹굴고 친구들과 놀았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친구들과 씨름하고 몸싸움하며 뒹굴면서 놀았던게 레슬링의 기초를 다졌던게 아니었나 생각되기도 해요

 그러다 문원중학교에 들어갔을 때였어요. 장난치다가 체육선생님 눈에 띄었는데 선생님이 야단은 안치고 조용히 부르더라구요. 작았지만 날래고 운동신경이 빠른 저를 레슬링을 시키려고 눈여겨 본거죠. 안 하겠다 소리할 수 없어 시키는 대로 했는데 처음엔 재밌더라고요. 준비도 없이 들어갔다가 제 인생의 길이 되버린거죠 레슬링이 직업이 될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 못했어요

 심권호는 최근 통일관련 전문가가 언론 인터뷰에서 대북접근은 심권호 선수처럼 진정성을 가지고 대해야 한다고 주장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 북한 선수들이 국제대회에서 만나면 깍듯한 선배 대접을 한다는 데 무슨 이야기인가요?  

 국제대회를 많이 다니다보니까 북한 선수들과 자연스럽게 만나게되는 기회가 생겨요. 그러다보면 북한 선수들과 같이 연습하다 말도 하게되고 조금씩 친해지죠. 북한 선수들 중에 나이가 어린 친구들에게 필요한 스포츠 용품들을 주거나 레슬링 관련 기술을 조금씩 가르쳐줬죠. 그러자 북한 선수들이 마음을 열고 형님 대접을 해주더라구요. 지금은 친한 동생 만나는 것처럼 대합니다.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국제대회에서 만날 일이 생기겠죠.

- 파이널 어드벤처, 출발 드림팀 등 다양한 방송활동을 많이 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인기 비결이 뭐라고 보나요

 저는 방송 자체가 몸으로 하는걸 많이 해요. 대본이 없는 프로그램을 많이 합니다. PD들도 대본없이 알아서 하라고 합니다. 결말이 어떻게 날 지 모르는 프로그램이죠. 각본따라 만들어서 하는게 아니라 있는 저의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점을 잘 봐주시는 것 같아요. 방송은 회사일이 지장없는 범위내에서 합니다. 출발 드림팀은 일요일에 촬영해서 부담이 없구요. 부득이한 경우만 휴가를 내던지 합니다.

- 예능은 언제부터 했나?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끝난 후부터 했으니까 레슬링 해설까지 합하면 햇수로 따져 20여년 됩니다. 제가 캐릭터가 재밌잖아요. 원래 성격이 유쾌해요. 잘 웃고, 놀기도 좋아하고. 방송에서도 뭘 꾸미거나 하지 않아요. 어떤 프로그램에서 상황을 설정하거나 내 모습과 달리 연기를 해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바로 안하겠다고 했어요. 평상시 있는 모습 그대로 나를 보여주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위례사업본부에서 만나게 되면 반갑게 인사해주세요. 건설인으로서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한상준기자 newspia@

〈앞선생각 앞선신문 건설경제-무단전재 및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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