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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마크 열전> 전쟁과 여성 인권박물관
기사입력 2012-10-30 09:22:46.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좁은 입구·위안소 재현 천장 낮은 골방…건물에 恨을 입혔다

   


“우리의 처절한 정원에서 석류는 얼마나 애처로운가”

 -아폴리네르 ‘칼리그람’ 중-

 

 우리가 과거에 대한 기억을 잊는다면 어떻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2011년 8월30일 헌법재판소는 세기의 판결을 내렸다. 재판관 6(위헌) 대 3(각하) 의견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의 청구권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구체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피해자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헌재는 판결문을 통해 우리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를 강하게 질타했다. “소모적인 법적 논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나 외교관계 불편 등 불분명하고 추상적인 사유가 기본권 침해의 중대한 위험에 직면한 청구인들에 대한 구제를 외면하는 타당한 사유가 되지 못한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10월11일 일본 도쿄지방법원 민사2부는 1965년 한ㆍ일 청구권 협상 체결과정의 문서들을 공개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제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배상 문제는 법적으로 탄력이 붙었다. 너무 늦었지만, 언젠가는 꼭 매듭을 짓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다.

 공교롭게도 우리나라와 일본 법정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이 제기한 소송이 승소한 시점에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이 개관했다. 
     
박물관 관람 첫코스. 한복입은 소녀의 시선을 따라 어두운 지하실로 내려가는 것이 시작이다. <사진= WISE건축 제공>


 마포구 성산동 성미산 아래 자리 잡은 박물관은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를 증언하는 공간이다. 2004년 건립위원회가 발족됐지만 완공까지 9년이 걸렸다. 당초 박물관은 서울시 소유의 서대문 독립공원에 지어질 예정이었지만 광복회 등이 ‘순국선열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며 반대하는 바람에 성산동으로 쫓겨왔다. 이후 위안부 할머니와 우리나라 개인 및 단체(현대중공업 10억원 등), 일본인 3000여명이 기부한 돈으로 박물관이 완공됐다.

건축물은 위안부 역사를 증언한다. 할머니들의 아픔이 건축물로 고스란히 형상화됐다.

 근사한 진입구와 로비, 친절한 안내공간, 큼직한 전시실은 설계자가 의도적으로 제외했다. ‘전쟁과 여성 인권’이라는 무거운 주제의 박물관이지만 입구는 일반 주택 대문보다 작다. 입구를 지난 관람객은 대체 어디로 갈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이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어린 10대 소녀시절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전쟁 속으로 침잠했던 경험을 묘사한 건축설계 탓이다. 박물관의 모든 동선은 할머니들의 위안부 역사와 일치한다. 이 때문에 설계자가 의도한 대로 관람객이 움직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순서는 지하 1층에서 계단, 2층, 1층 순서다.

 로비 왼쪽 6m 높이의 옹벽에 그려진 한복 입은 소녀의 시선을 따라 어두운 지하로 끌려가듯 내려가면 어두운 조명과 퀴퀴한 냄새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한쪽 구석에 자리 잡은 멍석 깔아놓은 천장 낮은 골방과 위안소를 재현한 공간은 위안부 소녀들의 처참했던 하루하루를 보여준다.

 이후 계단을 따라 2층 전시관으로 올라가면 시멘트 벽돌이 그대로 드러난 벽면을 마주하게 된다. 낡은 벽돌 위에는 피해자 할머니들이 한국어와 일본어, 영어로 쓴 글귀가 있다. ‘그걸 다 기억하고 살았으면 아마 살지 못했을 거다.’ 짧은 글귀가 관람객의 마음속 깊이 파고든다.

   
박물관 내부 모습. 건축설계자의 의도대로 지하에서 계단, 2층, 1층 순으로 괌람하는 것이 좋다.
 2층 추모관에는 빛과 바람이 들어온다. 이곳에는 피해자들의 이름과 사망일자가 새겨진 검은 벽돌이 놓여 있다. 관람객들이 벽돌 틈 사이에 꽃들을 꽂아 놓았다. 벽돌담 너머에는 초록색 정원이 있다. 이제야 비로소 과거에서 현재로 돌아온 느낌이다. 2층에서 다시 1층으로 내려오면 기획전시실이 자리 잡고 있다. 남쪽으로 난 유리문을 통해 정원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이곳은 미래의 공간일까. 언젠가는 이 정원 같은 공간에서 전쟁 희생자들이 시원하게 통곡하며 과거를 털어 버릴 수 있을까. 그들의 한을 달랠 수 있을까.

 설계를 맡은 WISE건축의 전숙희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지명설계가 진행 중이던 시점 위안부 할머니들이 굳게 닫힌 일본대사관 문 앞에서 시위하는 모습을 봤다. 1시간이 넘도록 시위가 진행됐지만 대사관은 묵묵부답이었다. 굳게 닫힌 일본대사관을 보며 작지만 큰 존재감이 있는 박물관을 세우자고 다짐했다. 그렇게 건축 콘셉트를 잡았다.”

 전쟁은 끝났다. 하지만 상처는 남았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상처는 그저 흘러가게 내버려 두는 것이 좋다고. 그렇지만 만약 우리가 과거의 상처를 잊는다면 어떻게 미래를 감히 입에 담을 수 있을까. 인류에 대한 책임, 인간의 존엄성, 도덕성에 따른 행동은 시대를 통틀어 어떤 법률이나 명령보다도 우선한다. 시공간을 뛰어넘어 인간은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은 어쩌면 우리 다음 세대를 위한 공간일지도 모른다.

 

최지희기자 jh606@

〈앞선생각 앞선신문 건설경제-무단전재 및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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