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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을 걸으며> 소백에서 태백으로 (백두대간 도래기재~화방재)
기사입력 2010-06-28 09:16:39.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김호영 본지 어문연구소장

충청북도와 경상북도 경계에 솟은 소백산을 지난 백두대간은 선달산쯤부터 강원도와 경북 사이를 흐르다가 태백산 부소봉부터는 완전히 강원도 품 안에 들어간다. 이번 구간은 경북 봉화와 강원도 영월 땅이다. 영월은 조선시대 비운의 왕 단종이 유배되고 죽은 곳이다.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죽은 금성대군은 소백산 산신령이 되고 단종은 태백산 산신령이 됐다는 설화가 있다. 높이로 봐도 태백(1567m)이 소백(1439m)보다 높은데 태백은 도립공원이고 소백산은 국립공원이다. 무슨 이유가 있을까.

 이번 구간 거리는 약 24㎞인데 비교적 어렵지 않다.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진폭이 크지 않은 덕이다. 지난주 20㎞ 미만의 거리인 한남금북정맥 청원군 산길에 비해 수월했다. 하기야 고도가 높아서 같은 기온이라도 시원하고 땀이 덜 났기 때문일 터.

 들머리 도래기재는 봉화군 춘양면이다. 춘양면은 춘양목의 이름이 유래된 곳. 조선시대 역(驛)이 있어서 도역마을이라 불리다가 도래기재로 변음됐다고 한다. 역은 당시 주요 교통수단인 말(馬)을 관리하는 곳으로 사람과 말이 숙박할 수 있는 시설이다. 봉우리 세 개쯤 넘어 첫 번째 산인 구룡산(1344m)은 도래기재에서 5㎞가 좀 넘는다. 일기예보는 오후에 비가 온다 했으니 그저 비 맞지 않는 것만 감지덕지, 조망이 없는 건 감수해야 한다.

 고직령과 곰넘이재를 지나면 신선봉이다. 대개 신선봉이라면 암릉이 있어 신선(神仙)이 살 만하구나 하는 건데 그냥 풀숲에 무덤 하나 정상을 지킨다. 무덤의 주인공은 처사(處士) 경주 손씨. 이번 산길이 세 번째인지 겨우 생각해내는 내가 뚜렷이 기억하는 곳이다. 벼슬 없는 ‘처사’라서 친숙한 느낌이었는지 모른다. 신선봉에서 2㎞ 남짓 가면 차돌이 많았다해서 차돌배기라는 곳이다. 대간길은 차돌배기에서 북쪽으로 꺾인다. 남쪽으로 직진하면 각화산(覺華山, 1176m)이다. 각화산 기슭에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태백산사고지(史庫址)가 있다. 조선 사고(史庫)는 초기에 서울 충주 성주 전주에 있다가 임진왜란 후에 태백산 오대산 정족산 적상산 네 군데로 바뀌었다.

 각화산 갈림길에서 4㎞ 가까이 가면 깃대배기봉(1371m)이다. 원래는 안개가 연기처럼 보여서 백연봉(白煙峰)인데 일제시대 측량하느라 깃대를 꽂아서 깃대배기봉이라던가. 태백산에 거의 다 왔다. 부소봉(扶蘇峰, 1546m)은 단군의 둘째아들 부소왕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또는 불 지필 때 쓰는 부싯돌이 많아서 부쇠봉이라는 말도 있다. 정상석은 부쇠봉으로 돼 있다. 태백산 천제단에 붉은 글씨로 씌어있는 한배검은 단군의 다른 말이다. 우리 전통신앙의 핵심이다.

 한반도 지도를 보면 백두산부터 남으로 뻗어 내려온 백두대간은 태백에서 둥지를 틀 듯하면서 서쪽으로 꺾인다. 풍수지리설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명당이다. 날머리 화방재(花房)는 태백시 혈동(穴洞)에 속하는데 바로 백두대간의 혈(穴)에 속하는 곳이 태백산이다. 태백과 소백은 양백(兩白)이라 하여 신성한 순백색으로 표상되는 정신적인 정기의 합류처라고 한다. 경북 북부지방의 유교적 토양과 태백산 천제단으로 상징되는 도교의 융합이라고 할지. 그런데 유교와 도교가 국립공원과 도립공원으로 나타났는지는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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