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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창] 붉은 꽃, 피다

   

 투명 유리잔에 뜨거운 물을 붓자 꽃망울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붉은 꽃이다. 물속에서 피어나는 선홍색 꽃, 점점 커지는 꽃은 순식간에 유리잔을 발갛게 물들인다. 도대체 이 색은 어디서 온 것일까. 흙에서 왔을까, 바람에서 왔을까, 아니면 햇빛이 만들어 준 것일까. 아니다. 이 색은 분명 사람의 마음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리라.​

  꽃이 집으로 날아온 건 한 달 전이다. 퇴근했더니 현관 앞에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상자 속에는 고구마와 고추, 호박, 그리고 무언가를 담은 봉지가 들어있었다. 상자를 보낸 분은 강원도에 사는 지인이었다. 농사를 짓는 분이 아니니 분명 텃밭에서 수확한 것들임이 분명했다. 코끝이 찡했다. 조그만 텃밭에서 거둔 것이라야 얼마 되지 않을 터인데 그걸 나누겠다고 보냈으니 말이다.

  봉지에 든 건 바싹 말린 비트였다. 검붉은색의 결정체에는 자연과 사람의 시간이 응축되어 있었다. 겹겹이 싸인 시간을 헤아려 보았다. 밝은 햇살이 보이고 맑은 바람이 느껴졌다. 거친 손길과 분주한 발걸음도 감지되었다. 흙의 배려와 자연의 조화, 사람의 손을 거쳐 거듭난 비트 차는 내 가슴을 적시기에 충분했다.

 

 사람의 관계가 꽃물처럼 환하게 번진다는 걸 실감한 건 지난여름이었다. SNS의 글을 통해 알게 된 지인은 도시의 삶을 접고 강원도에 터를 잡은 분이었다. 그분의 글과 주위 풍경은 내게 적잖은 위안이 되었고 집을 방문하기에 이르렀다. 사진 속의 집과 자연처럼, 품이 넓은 분에게서 편안함을 느꼈다. 그건 글의 힘이었다. 글과 사람이 같으면 마음은 대문이 필요 없는 집 같다는 걸 알게 되었다. 동동거리며 사는 걸 염려했음인지 텃밭에서 거둔 먹을거리를 보내주었을 때 내 눈시울에도 붉은 꽃이 피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종일 서서 일하는 내게 비트 차는 따뜻한 위로다. 인정이 붉은색으로 우러날 때 마음에는 꽃이 핀다. 좋은 사람에게서는 햇살 우린 냄새가 난다.

 

장 미 숙(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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