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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글게 여문 붉은 보석, '다산' 염원

[엄재권의 민화이야기] 군주의 열매, 석류
   
엄재권, 석류화조도(石榴花鳥圖), 40×75cm, 2015

 

붉게 물든 단풍을 바라보다, 화실 한편의 ‘석류 화조도’가 눈에 들어왔다. 문득 석류의 새콤하고 달콤한 과즙이 떠올라 입안으로 침이 괸다.

 석류는 기원전 2세기경 한무제 때 장건(張騫)이 서역에서 돌아오면서 중국에 알려졌고, 우리나라에는 통일신라 시대에 건너왔다. 유교 사상에 입각한 조선 시대에 석류는 씨가 많은 과일로 수박, 포도, 오이 등과 함께 자손 번창의 의미를 지녔다. 자연을 벗삼아 시대 이념을 투영시킨 선조들의 생각과 염원이 발현된 것으로 오늘날에는 풍요로움, 번영, 번성 등으로 의미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편 석류는 송대(宋代) 구양수의 ‘삼다설’에서 부처님 손 같다하여 다복(多福)을 상징하는 불수감, 불로장생을 이루게 하는 다수(多壽)의 복숭아와 함께 다자(多子)로서 삼다(三多)를 이루는 길상과일 중 하나이기도 한다. 또 외형은 보석 주머니 같다 하여 사금대(砂金袋)로도 불렸다. 한 열매에 복된 의미가 가득한 석류는 도안화되어 판화, 건물 단청에도 응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혼례복과 혼수 등에도 많이 나타나며 우리네 삶을 축복하며 밀접하게 이어져왔다.

 이 그림 ‘석류화조도’는 금실 좋은 부부를 의인화한 한 쌍의 새를 배치했고, 탐스럽게 여문 석류를 그려 넣어 많은 자식을 두기를 염원하고 있다. 새가 서 있는 바위는 불멸의 장수와 행복한 삶을 구가하라는 축복의 의미를 담고 있다. 요즘 가족의 의미가 어느 때보다 소중해져서 그런지 그림이 새롭게 다가온다.

 한국민화협회장으로 있던 몇 해 전 문화예술교류의 하나로 회원들과 함께 실크로드의 중심부인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한 적이 있다. 2500년 역사의 고대왕국 부하라는 소박했지만 화려했다. 특히 망기트(Mangit) 왕조의 마지막 아미르(Amirㆍ王)가 거주했던 여름 궁전 시토라이 모히 호사(Sitorai Mohi Xosa)에서 만난 도상화된 석류 장식품은 우리의 그것과 일견 닮아있어 반가웠다. 해설사가 “석류꽃이 왕관의 모양이라 여기서는 군주를 상징한다”고 말해 줘 흥미로웠던 기억이 새롭다.

 실크로드 교역의 산증인이자 길상의 의미까지 지닌, 신묘의 이 작은 열매가 뽐내는 당당한 위용이 대견하여 다시 그림을 보게 된다.

 엄재권 한국민화협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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