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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창] 가을 매미

   

찬 이슬이 맺히고 서리가 내릴 만큼 깊은 가을이다. 이른 아침, 아파트 모퉁이를 지나치는데 무엇이 어깨를 툭 치더니 바닥에 떨어진다. 가만히 집어 올려 손바닥 위에 얹어 놓고 살펴본다. 반짝이는 눈, 새까만 등껍질과 투명한 날개가 풍장(風葬)을 치른 듯 바짝 마른 온전한 매미 허물이다.

 

 이 녀석은 무슨 할 말이 남아 있기에 텅 빈 속으로 여태 떨어지지 않고 버티었을까. 가느다란 다리를 곧추세워 투박한 나무껍질 깊숙이 파고들었다가 오늘에야 내 어깨를 툭 친 이유가 궁금하다. 생명이 빠져나간 녀석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라 길섶에 곱게 놓아두고 가던 길을 간다.

 

 매미의 허물이 온종일 머리에서 맴돈다. 얹힌 듯 만듯한 가벼움이 손바닥에 그대로 남아 있어서다. 매미는 땅속에서 7, 8년을 기다렸다가 우화(羽化)를 거쳐 성충이 된다. 우화는 매미 한살이의 커다란 전환점이다. 벌레로 삶을 마감하는 것과 비상하는 매미의 삶은 우화의 성패에 따라 갈리기 때문이다. 땅속에서 벌레로 일생을 마치고 말았다면 어찌 매미의 오덕(五德)을 남길 수 있었으랴.

 

 내 어깨 위에 떨어진 허물의 가벼움은 우화에 성공하여 의무를 다하고 간 생명 순환의 흔적이다. 여름 내내 소나기처럼 쏟아 낸 매미의 울음소리에 담긴 우화의 교훈을 말귀 어두운 나는 알아채지 못했다. 비운다고 말만 하고 욕심은 그대로인 채 가을에 이르렀다. 보다 못한 매미가 제 허물을 던져 ‘하루하루 우화하듯 새롭게 살라’고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인생의 우화는 흔히 인생 2막 또는 3막이라 일컫는다. 내 삶의 우화는 정년퇴직 후에 시작한 글쓰기이지만, 아무것도 남길 수 없을까 두려운 걸 보니 나는 아직도 가벼워지지 않은 게 분명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길섶에 놔두었던 허물은 보이지 않고, 매미가 매달려 있던 성긴 가지 사이로 내민 파란 하늘만 시리도록 차갑다.

 

조 이 섭(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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