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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恨)이 깊으면 흥도 깊다

   

바야흐로 트롯의 시대다. 작년부터 솔솔 불기 시작한 트롯이 올해 들어 국민가요(?)로 자리 잡았다.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보이스트롯, 트롯신이 떳다 그리고 사랑의 콜센타 ‘신청곡을 불러드립니다’ 등 여러 방송국에서 트롯프로그램을 편성하여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다시 시작된 트롯열풍은 코로나19로 우울한 평범한 서민들에게 큰 위로를 주고 있다. 그 와중에 추석특집으로 방영된 가수 나훈아의 ‘대한민국 어게인’은 전국 시청률 29%를 찍으면서 활짝 피었다. 이 공연은 기성세대는 물론 젊은 층도 나훈아가 왜 나훈아인지 실감케 하였다.

특히 5.18 광주민주화 운동의 희생자가 어머니에게 보내는 ‘엄니’라는 노래도 재조명 되어 국민들의 마음을 짠하게 만들었다. 새로 발표된 신곡 ‘테스형’은 순식간에 국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신드롬이 되었다. 유투브에도 ‘테스형’ 배우기 콘텐츠가 속속 올라오고 있다. 그 노랫말을 들어보면 꼭 내 삶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아 나도 움찔한다. 처음 들을 땐 웃겼고, 자꾸 들으니 마음이 아려온다.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테스형’ 가사는 2절부터 읽고 1절로 돌아오면 그 맛을 훨씬 더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 일제강점기에서부터 6.25전쟁, 60~70년대를 거쳐 오늘까지 트롯은 오랫동안 국민과 함께한 노래였다. 오늘의 이 나라를 만들어온 고달픈 선배들의 한(恨)을 위로해주고 함께 웃던 노래였다. 원래 한이 깊으면 흥(興)도 깊은 법이다. 나는 트롯의 묘미를 슬픔을 마냥 슬프게 부르는 것이 아니라 슬픔까지도 결국에는 흥으로 치환해내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즉, 한을 한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한을 흥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인의 애환을 노래하던 트롯은 1990년을 넘어서면서 조금씩 힘을 잃기 시작했다. 그렇게 트롯은 우리 곁에서 멀어져갔다. 간간히 젊은 트롯 가수들의 약진이 있었지만 대세를 뒤집지는 못했다. 트롯은 주류에서 밀려났고 비주류가 되어 품위 없는 열등한 노래로 인식되었다. 마치 테스형의 가사처럼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사랑은 또 왜 이래, 세월은 또 왜 저래”라고 외치면서 트롯의 신세를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형.”하며 트롯은 낙담하고 있었다.

 

 흥을 돋우려는 것과 잘 보이려고 애쓰는 것은 다르다. 하늘과 땅 차이다. 흥을 돋우고자 애쓰는 모습은 멋있지만, 잘 보이려고 잔꾀를 부리는 모습은 재미도 멋도 매력도 없다. 오히려 불편하다. 우리는 나에게 잘 보이려고 내 앞에서 알짱대는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다. 반면에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겐 무한한 신뢰로 환호한다. 원래 트롯은 흥을 돋우는 노래다. 추석 때 나훈아의 공연도 그랬다. 그는 잘 보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노래에, 감성에 충실했다. 대한민국이 열광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의 재주 때문이 아니다.

 

 요즘 트롯을 보다 보면 가끔 불편할 때가 있다. 관객에게 잘 보이려고 과하게 애쓸 때다. 그럴 땐 ‘굳이 저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냥 노래에 충실하면 되는데…’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흥을 돋우는 것이라 잘못 생각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충분히 이해하지만, 나는 트롯을 부르는 사람들이 팬들에게 잘 보이려 눈치 보기보다, 자신의 노래에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오래도록 사랑받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팬들은 억지로 흥을 부추긴다고 흥이 나지 않는다. 자신도 모르게 흥이 나는 것이다. 그 흥은 가수와 관객의 진실한 만남이 만들어낸다.

 

 트롯에 대한 성철스님의 일화가 있다. 법정스님이 성철스님으로부터 부탁받은 법문 번역을 마치고 성철스님께 번역본을 보내면서 동봉한 바흐의 음악에 대한 답으로 보낸 테이프가 이난영이 부른 ‘목포의 눈물’이었다고 한다. 그 편지에서 ‘보내준 번역문은 법정의 성정대로 문장의 향기가 가득하다’고 감사를 표하였지만, 동봉해 보내준 바흐의 음악 ‘G선상의 아리아’는 들어도 잘 모르겠다면서 나는 ‘목포의 눈물’ 같은 음악이 더 가슴을 때린다며 법정도 한번 들어보시라는 답장을 보냈다고 한다. 그만큼 트롯은 빈부귀천과 종교를 떠나 한국인의 삶에 깊숙이 연결되어 있는 노래다.

 

 모처럼 찾아온 트롯열풍은 트롯에게 새로운(행복한) 고민을 안겨주었다. 트롯은 고민해야 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나는 트롯이 다른 장르와의 콜라보를 통해 더더욱 업그레이드되어 글로벌-트롯으로서의 K-트롯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K-트롯이 세계인의 애환을 달래주는 노래가 되었으면 좋겠다. 2020년 코로나19로 못내 우울한 가을이지만, 트롯이 있어 조금은 위로가 된다. 테스형~~~

 

김 규 철 서원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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