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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창] 책 판 사연

   

집 근처 사거리였다. 1차선에서 신호를 받고 좌회전하던 차 한 대가 중앙선 너머로 진입했다. 좌회전 후에 합류하는 직진 차선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것 때문에 확장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중앙선에 세워진 구조물 때문에 한 번 엇나간 차량은 합류할 수 없는 도로였다. 당황한 운전자는 그대로 차를 세웠다. 세우든 달리든 위험한 상황이었다.

 

 우리 동네라 앞뒤 신호 차이까지 내가 잘 아는 곳이었다. 위험한 모습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나는 클랙슨을 울리며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다. 다행히 말귀를 알아들은 운전자가 나를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나는 한 5m 뒤에 나오는 공터로 차가 빠지도록 도왔고 그사이 마주 온 차량은 없었다.

 

 차를 세우고 운전석으로 갔다. 내 나이쯤으로 보이는 여자가 울고 있었다. 많이 놀란 모양이었다. 창을 노크했더니 여자가 차에서 내렸다. “괜찮아요. 여기 길이 원래 위험해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여자는 몇 번이나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나는 여자가 좀 안정을 찾은 후에 운전해야 할 것 같아서 함께 있어 주기로 했다.

 

 여자는 초보가 아니라고 했다. 그저 초행길이었을 뿐이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내가 작가라는 걸 알게 된 여자는 온라인 서점 앱을 열어서 내 책을 발 빠르게 검색했고 주문 완료된 화면까지 보여주었다. 뭐 그렇게까지, 싶었지만 보답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고 그런 마음을 완고하게 거절하는 것도 때론 실례라고 느껴졌기에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공사 중인 도로를 벗어나는 곳까지 여자를 배웅해주고 집으로 오는 길에 피식 웃음이 났다. ‘주문은 그렇게 신속 정확하게 하면서 운전은….’ 웃다 보니 내가 예전과 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본의 아니게 책을 팔게 된 사연 속에서 선의나 관심, 배려 같은 단어가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그간 무관심이 배려라고 생각해왔던 차가운 내 머리카락을 말이다.

 

이 은 정(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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