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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안전을 위한 또 다른 시작

   

지난 10월 8일 늦은 밤 울산의 주상복합 아파트에서 또 한 번의 대형화재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사고 희생자가 한 명도 없었지만 15시간 이상 지속된 큰 불로 제천(2017년), 밀양(2018년), 이천(2020년) 등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던 화재를 떠올린 아찔한 순간이었다.

 

 지난 2010년 부산 해운대에서 발생한 우신 골든스위트 화재를 계기로 건축물의 용도나 규모에 따라 외벽 마감재는 불연 또는 준불연 재료를 사용하도록 의무화됐다. 이 규정은 작년 11월부터 3층 이상 또는 높이 9m 이상의 건축물로 확대 적용되도록 개선됐다. 이번 울산 화재는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화재사고 예방과 관련해서는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그렇다면, 관련 제도를 꾸준히 개선하는 데도 대형 화재사고가 끊이지 않는 원인은 무엇일까? 시설물 안전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필자는 안전에 대한 우리의 안일한 생각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안전 취약 요소가 있음을 알면서도 지금까지 별 문제 없었다는 이유로 안전에 대한 시간과 노력 투자에 인색하거나, 취약함을 알면서도 대책마련을 미루고 등한시하는 경향을 아직도 자주 접하게 된다. 이에 화재안전과 관련한 그 간의 노력을 짚어보면서 몇 가지 개선방안을 고민해 보고자 한다.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던 제천, 밀양 등의 화재사고를 계기로 우리는 화재안전 개선대책을 마련하고 화재 현장대응 활동을 정보로 축적해 활용하도록 했다. 축적된 정보를 공개하여 자발적인 시설 개선을 유도하는 노력도 있었다.

 

 2018년에는 다중이용시설 등 화재위험이 큰 전국의 건축물 55만 4000동을 대상으로 건축·소방·전기·가스 시설 등 위험요인을 종합적으로 조사하는 범정부 차원의 화재안전특별조사도 진행됐다. 올해 5월부터 시행된 건축물 관리법을 통해 일부 용도를 대상으로 기존 건축물의 화재안전성능보강을 의무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울산 화재사고처럼 고층건축물에 대해서는 법규를 강화하는 것 이외에는 안전 확보를 위한 노력이 여전히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그 결과 제도개선 이전에 건축허가를 받은 고층건축물은 화재 위험이 상존하는 실정이다.

 

 올해 9월 말 기준으로 시설물통합정보관리시스템(FMS)에 등록된 국내 고층 건축물(30층 이상 또는 높이 120m 이상)은 587개소에 달한다. 이 중 화재 예방을 목적으로 한 외벽 마감재 관련 법령이 마련된 2012년 3월 이전에 준공된 고층건축물이 285개소나 된다.

 

 또한, 국내의 고층건축물 현황과 관련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모두 135개동(공동주택 97동, 업무용 34동, 숙박시설 2동, 기타 2동)에서 가연성 외장재가 사용된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울산 주상복합아파트 화재 확산의 주요 원인으로 추정되는 알루미늄 복합패널의 접착제나 충진재와 같이 외벽 마감재의 구성 재료별 특성을 고려하면, 화재 피해 위험을 안고 있는 고층건축물의 규모는 집계된 것보다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는 화재안전에 취약한 요소가 여전히 산재해 있다. 화재는 언제 어디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하면서, 취약 요소를 줄이기 위한 몇 가지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시설물안전법의 적용 대상을 점진적으로 확대하여 시행하고 있는 것처럼, 지난 번에 추진했던 화재안전특별조사와 같은 노력을 통해 관련 현황을 꾸준히 파악하여 관리할 필요가 있다. 화재 취약성의 정도에 따라 단계적으로 화재안전성능보강을 유도하며 대상을 확대해 가야 할 것이다. 화재안전등급이 취약한 시설을 지자체나 중앙부처가 우선적으로 지원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둘째, 화재 예방의 실효성을 높이도록 관련 규정을 정비하는 것이다. 현재는 알루미늄 복합패널과 같이 복합자재가 준불연 재료 이상의 성능을 확보한 경우 단열재는 난연재료를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복합재료의 가공면, 절단면이 취약한 점을 감안하여 접착제와 같은 복합재료의 구성, 재료, 성능 등의 기준을 보다 상세히 규정하고 정비할 필요가 있다.

 

 셋째, 건물 외벽 화재는 즉시 감지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여 가연성 외장재가 사용된 외벽 등 취약 부위에 화재감지기나 CCTV를 설치하도록 해야 한다. 공항시설법에 따라 고층건축물 외벽에 부착하는 항공장애 표시등에 화재감지 기능을 추가하는 것도 아이디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울산 화재사고를 접하면서 “사고는 예측하지 못하는 한 순간에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여러 번 경고성 징후를 보낸다”는 1대29대300의 ‘하인리히 법칙’이 다시 한 번 떠올랐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를 계기로 안전과 관련해 기울여온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국민 안전확보를 위한 관심과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모두의 지혜를 모아 다 같이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이석호 한국시설안전공단 생활안전관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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