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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교실의 진화

김태형 건설기술부 차장
   

 ‘한국에서 담장이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을 꼽자면 두 가지가 있다. 학교와 교도소다. 둘 다 담을 넘으면 큰일 난다.’<어디서 살 것인가> 중에서

 ‘학교 건축은 교도소’라고 일갈하는 유현준 홍익대 교수는 대한민국의 학교 교실과 건물이 건국 이래 바뀌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학교 건축에 레트로(복고풍)는 없다. 현재가 곧 과거다. 이런 공간에서 12년을 생활하는 아이들은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양계장에서는 독수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건축의 다양성을 강조하는 그의 말은 해가 갈수록 독해진다. 왜 그럴까.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학교 건축을 바꿔야 한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묵묵부답이어서다. 철옹성 같은 학교 행정 앞에선 독설 건축가도 두손 두발 다 든다. 교육부가 정해준 교실 높이 2.6m는 바이블이다. ‘층고는 높이고, 층수는 줄이라’는 숱한 충고는 행정의 높은 벽에 번번이 부딪힌다.

 낡은 교실을 잘 고쳐 쓰는 것도 중요하다. 전국 초ㆍ중ㆍ고교 6만8577동 중 당장 개축, 보수ㆍ보강 및 철거가 필요한 재난위험시설(DㆍE등급)만 200여동으로 추정된다. 교육부도 ‘우리 집과 같은 쾌적하고 아름다운 학교 환경’을 만들겠다며 5년간 학교시설 환경개선에 18조8000억원을 투입키로 했다.

 낡고 오래된 학교를 리모델링하는 것까진 좋은데, 문제는 그 기간 동안 학생들이 어디서 지낼지다. 대부분 학교가 싸다는 이유로 컨테이너 교실을 빌려 쓴다. 찜통ㆍ냉골 교실, 낡은 화장실과 어두운 조명, 지진에 취약하고 석면이 날리는 교실을 쾌적하게 바꾸기 위해 기존 시설보다 더 열악한 환경을 선택하는 아이러니다. ‘공평’이라는 이름으로 거제도부터 서울 강남까지 모든 공립학교가 전부 컨테이너 교실 임대료 10억원에 갇혀 있다. 답답한 현실이다.

 그래도 어딘가엔 영민하고 용감한 공무원이 꼭 하나쯤 있다. 한 줄기 빛이다. 지난 1월 국내 첫 ‘이동형 학교 모듈러’가 전북 고창고에 들어설 수 있었던 이유다. 이 공무원은 학생들의 학습권 보장을 일순위 목표로 잡았다. 관행은 후순위였다. 그는 예산 상한선을 깼고, 조달시스템도 바꿨다. 이동형 학교 모듈러는 100% 공장 제작 방식으로 지역제한 건축공사가 아니지만 조달 물품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지역제한에 걸릴 수 있다. 그가 깬 미세한 균열의 틈을 비집고 세종, 구미, 포항, 부산 등지로 이동형 학교 모듈러가 확산되고 있다.

 평등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숭고한 의지가 관행과 규제에 갇히면 전체주의와 만난다. ‘수준 이하’의 학교를 피하기 위해 만든 각종 가이드라인이 ‘수준 이상’의 학교 출현을 막기도 한다.

 건축은 우리와 연결돼 있고 우리의 모습을 비춘다. 학교 건축은 시대의 거울이다. 교실의 진화 없이 우리 사회의 바른 전진을 기대하긴 힘들다.

김태형기자 k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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